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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의도(@rhek)2011-10-29 16:15:24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
우리 역사에서 여왕은 세명이 있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그리고 진성여왕 . 이 세 여왕의 공통점은 모두 신라의 여왕이라는 것이다. 신라와 같은 시대의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여왕이 즉위한 일이 없었고, 그 후대인 고려나 조선에서도 여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왕의 존재는 우리 역사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부설명
1. 분황사의 금바늘과 은바늘
이땅 최초의 여왕은 선덕여왕이다. 경주에 있는 분황사에는 선덕여왕 때 세워진 탑이 하나 있다. 분황사 석탑, 향기로울 분(芬), 황제 황(皇) 향기로운 황제의 사찰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의 이 탑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올렸는데, 참 아름다운 탑이다. 그런데 이 분황사 석탑에서 선덕여왕과 관계가 깊은 아주 독특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금바늘과 은바늘이다.
2. 선덕여왕의 가문
선덕여왕의 집안을 살펴보면 아버지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대신 진평왕에게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맏딸 덕만공주가 훗날 왕위를 잇게 된 선덕여왕이었다. 둘째딸은 김춘추의 어머니이고, 막내딸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한 인물이다.
3. 선덕여왕의 즉위
'신성한 황제의 혈통을 이은 여인'이라는 뜻의 '성조황고'라는 존호가 붙여진 선덕여
왕. 그러나 선덕여왕 이전의 왕들에게는 따로 존호를 붙인 기록이 없다. 왜 선덕여왕만 유독 성스러운 혈통을 강조했던 것일까? 당시 여왕을 옹립했던 대표적인 세력은 김춘추와 김유신이었다.
4. 여왕의 탄생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딸이 왕위를 잇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위나 외손자가 왕위를 계승한 일도 없었다. 여성의 가계에서 왕이 나타나고, 여왕까지 탄생한 일은 유독 신라에서만 있었던 일이다. 경주에 있는 고분 중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에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타날 수 있었던 단서가 숨어있다.
5. 신라 여성의 지위
경상남도 울산군에 있는 한 바위에는 신라 여성의 지위를 알려주는 흔적이 남아있다. 남녀의 이름이 실명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나란히 새겨져 있는 바위. 이 바위는 신라여성의 지위를 가늠하게 하는 열쇠이다. 실제로 신라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는 경제력이다.
6. 비담의 난 - 진덕여왕의 즉위
여성이 아무리 지위가 높았다고 해도 왕까지 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여왕이 통치하게 되면서 여왕에 대해서 반발하는 세력은 없었을까. ‘한 밤 중에 반월성에 큰 별이 떨어졌다’647년 비담의 난 때 있었던 일이다. 반란군은 반월성에 떨어진 별을 보고 승리를 장담했다고 한다. 수많은 귀족들이 가담했던 이 반란의 명분은 여왕의 통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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